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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ES

청춘 : ARTICLE 2012

아픔은 ‘청춘’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Don't make me sad. Don't make me cry. Sometimes love is not enough and the road gets tough. I don't know why...’ 아침부터 라나 델 레이 Lana Del Rey의 노래 가사가 혀끝에 빙빙 맴돈다. 독일의 바트엠스 Bad Ems라는 낯선 도시에 도착한 지 이제 거의 한 달이 되어 간다. 만 명 남짓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울창하게 우거진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음악을 틀지 않는 다면, 매 시간 마다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와 하루 종일 다양한 새의 지저귐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유일하게 정적을 깨는 것은 한 시간에 한 번씩 지나가는 기차의 금속성 소리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60세 이상의 노인들이고, 가끔 스파에 요양하러 오는 관광객을 만날 수 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란강 Lahn R.에는 청둥오리가 놀고 있고, 지난 토요일에는 백조를 실제로 보았다. 조용함, 고즈넉함, 여유로움, 아름다움, 혹은 지루함이 여기를 정의할 수 있는 말들이다. 시끄러운 대도시에서라면 누구나 꿈꾸는 평온함과 안정감으로 그득하다. 도스토엡스키가 요양하러 왔었다는 유명한 스파가 있는 호텔이 있고, 어제는 그 호텔에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에 출연했던 노년의 배우가 왔었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지금 있는 슐로스 발모랄의 앞에는 번쩍이는 금빛 돔을 지닌 러시아 정교회의 교회가 마치 시공간을 가로질러 온 듯 자신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온통 이국적인 주변에서 추상적이고 문어적인 ‘청춘’이라는 말은 정말 낯설게 내게 다가온다. ‘젊음’의 육체와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나와 내 작업에는 부재와 상실에 대한 감각만 있을 뿐. 머리 안이 한정 없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문득, 어쩌면 노년의 안식과 요양의 이미지로 가득 찬 이 도시가 ‘청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청춘’은 ‘젊음’과는 나에게 전혀 다른 말이다. ‘젊음’과 ‘늙음’은 현상에 대한 객관적인 표현에 가깝다면, ‘청춘’이나 ‘황혼’이라는 말에는 거기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고 믿는 이의 회상적인 낭만이 깃들어 있다. 불안정함, 격렬함, 아픔. 관찰하는 이는 보통 이런 것들이 ‘청춘’에서 비롯된다고 상상하곤 한다. 마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마치 하나의 이야기가 영화 안에서 일단락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영화의 이야기가 삶의 단편이라면 우리는 길게는 백년 이상 연속되는 이야기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지나왔다고 생각하는 터널을 다시 걷고 있는 상대를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동정하거나 동경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터널의 끝에 도달했다고, 그 긴 터널의 바깥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말해줄 수 있고, 강요할 수 있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뭔가 달라져 있다면 천천히 익사하듯 둔해져가는 감각뿐. 혹은 둔감함에 비례해서 정교해지는 선택의 태도 정도. 어쩌면 예찬하거나 그리워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청춘’에 대한 가장 존경어린 태도일지도 모른다. 특별히 아프고, 특별히 아름다운 지나버린 과거로 만들면 만들수록, 푸른 빛깔은 점점 탁하고 어두운 색깔로 변해간다. 오히려 가끔은 ‘청춘’이 여전히 희미하게 삶 안에 살아있음을 상상하는 것은 어떨까. 며칠 전에 산책하다가 만난 노부부가 떠오른다. 서로 허리를 감싸고 길을 산책하는 일흔이 넘은 커플을 바라보면서, 부러움과 동시에 신선함을 느꼈다. ‘...Come and take a walk on the wild side. Let me kiss you hard in the pouring rain...’ 만약에 늙어가는 것이, 청춘의 감각을 잃는 것이, 황혼이 다가오는 것이, 군더더기를 벗고 본질에 좀 더 다가가는 것이라면, 그저 기분 좋게 늙어 보겠다고 생각한다. ‘...Choose your last words. This is the last time. Cause you and I, we were born to die. We were born to die. We were born to die...’ 여전히 라나 델 레이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오용석 2012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