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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ES

PHENOMENAL WORLD 최요안 (2016.6.9 - 7.1 갤러리 생각상자)

Untitled 1-6, Photomontage & Oil Painting, 241x234cm, 2016

 

이미지로 폭력에 대항하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폭력성을 정확하게 재현한 이미지로 폭력에 대항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그의 작업에서 그 역할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작업은 ‘Untitled’ 시리즈이다. 그가 줄곧 다루어오던 폭력성이 거의 추상적인 수준에까지 밀어붙여져 있다. ‘분노하라’의 형상이 역사의 기억을 건드리면서 관객에게 과거를 소환하게 하거나 ‘해처리’가 군인이라는 인간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Untitled’ 시리즈에서 대상들은 순수하게 폭력적인 가해자의 형상으로 태어난다. 다른 작업들이 가까이 다가갔을 때, 원래의 형상이 사라지면서 콜라주한 세밀한 형상으로 시선을 옮기게 만드는 것에 비해, ‘Untitled’ 시리즈는 관객이 작업과 일종의 거리를 두도록 밀어낸다. 이미 우리가 일반적으로 폭력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늑대, 해골, 피부가 벗겨진 고깃덩이와 결합하여, 끔찍함과 혐오를 증폭시킨다. ‘Untitled’ 시리즈에서 신체는 사라져버리고, 그들에게 더 이상 얼굴과 피부는 불필요하며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제복이며, 제복은 피부를 대체하는 표피이다. 더 이상 그들은 구체적인 인물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일반적인 인간을 지칭하는 군인이 아니며, 인간 안에 내재된 순수한 폭력성 혹은 그것을 표출하고 있는 ‘괴물 Monster’이다. 그들의 표피를 통해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표피가 그들의 본질을 지시한다. 폭력성의 진원지는 개인이라기보다, 그의 작업에서는 군복 그 자체 혹은 제복이다. 낫을 들고 있는 해골이 죽음의 의인화이듯, 이미 그들은 이름붙일 수 없는 어떤 것들의 엠블렘 Emblem이다.

 生, Photomontage & Oil Painting, 117x80cm, 2016

 

성기와 피부가 없는 신체는 인체도감에 나올 법한 무성적이면서 남성을 지칭하는 근육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거기서 재현된 대상 역시 사람이 아니다. ‘간인기고’와 ‘生’은 그런 의미에서 ‘Untitled’ 시리즈 묘한 짝을 이룬다. ‘Untitled' 시리즈에서 신체는 신체가 아닌 것들로 대체되어 있다. 그 신체의 부재를 채우고 있는 것은 늑대나 뱀이나 해골이나 짐승 같은 것들이다. 반면, ’生‘에서는 제복 안에 담긴 추상적이면서 폭력적인 존재들 마저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은 얼굴을 지니지 않은 고깃덩이와 같은 근육이다. 마치, 그것은 'Untitled'에서 배제된 신체만 따로 재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은 폭력을 상징하는 군복과 제복을 벗어버리고 난 이후 존재가 보편적인 고기의 신체로 다시 재현된 것처럼도 보인다. 마치 제복 자체가 피부였던 것처럼, 얼굴이 사라진 남성적인 근육이 아주 메마르게 남아 있다.

 

Hatchery, Photomontage & Oil Painting, 360x200cm, 2015

 

그에 비해, 다른 작업인 ‘해처리’는 일종의 원형 原形 같은 작업이다. 그의 작업 속에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군인의 존재를 기념사진 형식으로 이 작업은 보여준다. 하지만 '해처리'는 다른 작업들에 비해 훨씬 복합적이다. 군인들은 아직 5.18민주화항쟁에서 사람들을 구타하거나 죽이는 군인들이 아니다. ‘Untitled'에서 보이는 극도의 추상적 폭력성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그들은 여전히 20대의 뽀송뽀송한 앳된 얼굴을 지니고 있으며, 기념사진 안에 같은 포즈로 통제되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으로 존재한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획일적으로 보이는 군복 또한 각기 다른 형식과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콜라주적 방법론이 여기서 제시하는 흥미로운 지점은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오히려 처음의 단순한 형상들이 사라지고 좀 더 사적인 이미지로써 관찰하게 한다는 것이다. 군복들 안에 놓여있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군복의 획일적인 이미지와 상충하는 이미지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그 사이에서 인물 각자에 대한 일종의 개인성 Personality이 발현한다. 얼굴은 서서히 분열되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누군가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이제 부화된, 아직은 완성체가 아닌, 그래서 좀 더 그들은 불완전한 인간에 가깝다. 그들은 콜라주된 존재이지만, 아직 해체되지 않았다.

 

The Phenomenal World, Collage, 200x244cm, 2016

 

B-CONE이 폭력성에서 시작해서 특유의 비아냥 혹은 유희적인 전환을 보이는 반면, 최요안은 좀 더 사색적이다 못해 이미지적으로는 회귀한다. 마치 영화의 마지막에서 카메라가 뒤로 쭈욱 빠지면서 광활한 미장센을 보여주는 것처럼 전시는 조금은 급작스러운 롱샷으로 마무리된다. 바짝 말라버린 대지와 그 안에서 탐욕스럽게 푸른 거대한 나무는 언뜻 보기에는 조용한 풍경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맴도는 헬리콥터들은 평화스러움 보다는 영화 ‘아바타 Avatar 2009’ 에서 회사가 에이와 나무를 폭격하기 전 같은 불안한 긴장감을 연상시킨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The Phenomenal World’의 나무는 생명이 아니라, 파괴되어야 할 것들로 만들어져 있다.

그의 이번 전시 ‘Phenomenal World’는 솔직히 꽤나 혼돈스럽다. 이 혼돈스러움은 각각의 작업들이 각자 방향성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 안에서 작가의 관찰하는 위치도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작업 시리즈들에서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면서 정확하지 않은 것도 그 혼돈스러움을 증폭시킨다. 그가 바라보는 ‘Phenomenal World 현상계 또는 경이로운 세계’에서,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사악하다. 그러면서 ‘Phenomenal World’는 온전히 남성의 세계일 뿐이다.

 

가장 근작인 ‘The Phenomenal World’에서 작가의 관찰지점은 특히나 모호한 시점을 유지한다. ‘해처리’에서 보여주는 일말의 동정과 같은 눈빛, ‘Untitled'에서 보여준 격렬한 비난과 동시에 보이는 동화 同化, ’生‘에서 보이는 관조나 자기배려 등과 같이 감정적으로 읽히는 지점이 없으며, 태도에 있어서 유보적인 위치에 있다. 모든 것을 조망하는 듯한 그의 관찰지점이, 영화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1979'에서 윌라드 대위가 커츠 대령의 왕국에서 나가면서 타는 헬기에서 바라보는 시선인 것인지, 혹은 그들을 구출하러 들어오는 구원자들의 헬기에서 바라보는 시선인 것인지, 혹은 커츠 대령 자신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인 것인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새삼스레 ‘이미지의 정치성은 어디에서 발현하는가’와 같은 본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시점은 항상 귀환한다. 특히나, 광주에 관한 가장 강한 이미지로 작업하는 최요안의 작업들에서 정치성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의 탐구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정적인 방향으로, 혹은 그것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바라보며 그들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롭다. 군인출신이었던 그의 개인적인 이력 탓일 수도 있지만, 그의 시선은 ‘군인-가해자’에 오랜 시간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다. 이번 전시의 혼돈스러움에서 발견한 중요한 것은 그 시선들의 미묘한 변화이다. ‘군인-가해자’, 혹은 ‘군인-피해자’, 혹은 ‘군인-폭력’, 혹은 ‘제복-폭력’, 그리고 아직 결정하지 않은 시선까지.

하나의 이미지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서 작가가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럴 수 있는 순진함을 아직도 가질 수 있다면, 일종의 축복일 수도 있겠다. 사명감에 사로잡혀 강력하게 작업을 할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보통은 항상 흔들림을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생산하는 이미지가 유의미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이미지에 세계에 대한 태도와 의지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보통 의지는 굉장히 사적인 발화이다. 공적이고 정치적인 소재에서 작업이 발현하더라도, 가장 사적인 작가의 생각이 격렬하게 묻어날 때, 작업은 그때서야 관객들의 사유에 하나의 작은 시작점으로 안착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그의 유보와 흔들림이 과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조심스레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 오용석은 현재 미술작가로 활동 중이며, 주요활동으로는 2014 광주신세계미술상, 2013 SeMA 신진작가, 2012 국립현대미술관 고양스튜디오, 2010 금호미술관 영아티스트 등이 있으며, 주요전시로는 ‘퇴폐미술전’ (아트스페이스풀 2016), ‘Made in Seoul' (메이막아트센터 2016), ‘사이렌’ (갤러리 조선 2016), ‘우리를 위한 셋’ (광주신세계갤러리 2015), ‘사랑에는 이름이 없다’ (플레이스막 2015), ‘XXX' (갤러리 버튼 2015), ’라운드업‘ (서울시립미술관 2013), ’롤랑의 노래‘ (갤러리 버튼 2013) 등이 있다.



출처 : 웹진 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