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대작사건’

 

현재, 조영남 사기죄에 대한 재판이 새로운 재판부와 함께 다시 시작되었다. 2016년 4월부터 7월까지 불붙었던 논란의 결과가 어떻게 진행될 지 흥미진진하기보다는, 어떤 오류가 다시 생기게 될 지 걱정이 앞선다. 사건의 개요를 읽다보면, 대작이 관행이냐 아니냐와 대작의 경우, 저작권이 작가에 있는지 조수에게 있는 것인지에 따라 판결이 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공소사실에 기초해서 보면, 대작 자체가 불법이며 범행이다. 현재 재판부의 의견에 따라, 대작에 대한 정의가 내려질 상황이다.

 

사건에 대한 많은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이 글을 시작한다. 다시 읽어본 텍스트들은 주로 인쇄되었거나, 인터넷을 통해 연재되었거나, 기사화된 내용들이다. 수많은 기자와 필자들이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논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 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사건에 대해 정리해 보는 것은 ‘대작’과 관련된 논쟁 혹은 그 논쟁이 피해간 지점에 혹은 그 논쟁이 피해간 지점에 여전히 ‘현재,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할 중요한 문제들이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SNS가 아닌 발간되거나 연재된 좀 더 정리된 텍스트들을 살펴볼 예정이다.

 

 

사건의 개요

 

가수 겸 화가 조영남(71)씨가 대작 그림 판매로 1억8천만원 상당을 챙긴 혐의로 2016년 6월14일 재판에 넘겨졌다. 조씨는 2011년 9월부터 지난해 1월 중순까지 송모(61)씨 등 대작 화가에게 점당 10만원에 주문한 그림에 경미한 덧칠 작업을 거친 뒤 호당 30만∼50만원에 판매한 혐의다. 20호짜리 그림은 600만∼1천만원에 판매됐다. 이 같은 수법으로 17명에게서 21점의 대작 그림을 팔아 1억5300여만 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조 씨의 매니저도 지난해 9월부터 지난 4월 초까지 대작 범행에 가담해 3명에게 대작 그림 5점을 팔아 2680여만원을 챙겼다. 이 중 대작 화가 송씨가 24점을 그렸고, 나머지 2점은 다른 대작 화가가 그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도 7점이 더 있었지만, 검찰은 피해자가 확인되지 않아 공소사실에서 제외했다. 그에게 적용된 것은 사기죄이다.

2016년 6월 13일에는 한국미술협회,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서울미술협회 등 미술인 단체 11곳은 조영남이 미술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4일 오후 1시 춘천지검 속초지청 앞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고소장을 제출하였다. 명예훼손과 관련된 소송은 각하되었다.

 

‘조영남 대작사건’에서 미술 전반에 종사하는 비평가, 작가, 관계자들이 엄청나게 관여하게된 계기는 조사 후 조영남씨의 발언들이었다.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다’, ‘팝아티스트로 용인되는 줄 알았다’ 등등. 그리고 대작이 관행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대해 SNS부터 언론에 이르기까지 그야마로 불꽃 튀기는 논쟁이 벌어졌고, 대작과 관련된 다수의견에 반했던 반이정씨, 진중권씨에 대한 반대와 포화도 어마어마했다.

 

 

‘미술계’의 반응

 

기소되기 전에 조영남씨는 기자들에게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다’, ‘팝아티스트로 용인되는 줄 알았다’ 등등의 발언을 했다. 그의 발언들에 미술계가 반응을 보이며, 대작에 대한 논쟁이 끝도 없이 벌어졌다. 미술계 대부분의 의견은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와중에 진중권씨와 반이정씨는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 맞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예술가의 터치를 회화의 진품성과 무관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20세기 예술을 앞 세기들의 예술과 그토록 다르게 만들어준 개념적 혁명의 한 가지 중요한 요소다." (David W. Galenson, Conceptual Revolutions in Twentieth-Century Art.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p.198)
 

2016년 7월에 진중권씨의 오마이뉴스 기고 글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대작이 관행이라는 근거로서, 데이빗 호크니, 임멘도르프,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앤디 워홀, 뒤샹, 무라카미 다카시의 사례들이 언급이 된다. 진중권씨가 언급한 현대미술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 분명 이해하고 숙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시한 글들은 읽기가 어려웠다. 틀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는데 왜 이렇게 동의가 안되는지에 대해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그의 트위터 글부터 오마이뉴스 기고에까지 뿌리깊게 깔려있는 계몽적인 태도 때문은 아닐까였다.

진중권씨의 지적 중에서 하나 동의하는 것은 대작 자체가 범죄이고 사기죄로 처벌해야할 범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영남 대작사건’의 재판은 대작이 불법이냐 아니냐로 판결될 것이며, 만약 불법일 경우, 우리는 수많은 작가들의 재판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조수가 참여한 작업들에 대해서는 컬레터와 일반에 고지해야할 의무가 생길 것이다. 반대로 대작이 불법이 아니고 관행임이 인정된다고 해도 그다지 순기능이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바라보기에 ‘조영남 대작사건’의 본질은 ‘대작’이 ‘관행’이냐 아니냐 문제가 아니다.

 

의견의 시시비비를 떠나, 개인적으로 흥미로우면서 피곤한 부분은 왜 이렇게 심한 의견의 충돌이 발생하며, 감정싸움으로 전환되는가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모든 논쟁은 관행의 변화에 기여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현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냉큼 권력에 주어버리고 우리는 대기 중이다. 2016년 4월의 이 사건이 발생하고 난 이후, 탄핵과 관련된 정국에서 보여지는 상황을 겪고나서 이해가 가는 부분들이 많이 생겼다. 많은 행위와 행동들은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 더 나은 선택이냐 아니냐의 문제보다는 각자의 현재상황을 정상적으로 유지시키느냐 아니냐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관행’

 

관행2 (慣行) [관행]

[명사] 오래전부터 해 오는 대로 함. 또는 관례에 따라서 함. [유의어] 상습, 관습, 버릇1

네이버 사전

 

‘관행’이라는 말은 요사스러운 곳이 있어서, 사실 사건 사고가 있을 때마다 튀어나온다. 대학을 처음 졸업하고 나와서 일을 구하거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 단어를 손쉽게 만날 것이다. 비상식적이어서 항의를 하면, 이런 것도 몰랐냐는 눈빛과 함께 ‘관행’이라는 말을 자주 들을 것이다. 보통 ‘관행’은 이미 있는 관례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것을 강요하는 입장에서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할 때 많이 쓰인다.

조영남씨의 발언 역시 그런 연유에서 사용된 것이라고 예상된다. ‘관행’이니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가 인지하지 못한 부분은 ‘대작’이 ‘관행’이라는 사실이 미술 바깥에 있는 일반관객들에게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작가의 작업은 작가가 직접 한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그러하다.

무급인턴, 아티스트피, 대작, 부정입찰 등 미술 안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미술계’, ‘관행’이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미술계’는 어디에 있으며, ‘관행’은 누가 만든 것인가 혼자 되묻게 된다. ‘관행’의 마술적인 힘은 그것을 누가 만들었는지, 누가 책임이 있는지를 물을 수 없게 만들며, 그것을 고치려는 사람들에게 싸울 상대가 없음을 인지시키는 데 있다.

 

반이정씨는 미술세계에 기고한 ‘조영남 대작사건을 읽는 법 | ’관행‘을 해명한다’를 통해 그가 왜 대작이 ‘관행’이라는 주장을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미술계의 절대 다수가 홀로 작업을 감당한다는 건, ‘관행’을 두둔한 나 같은 평론가도 잘 안다. 그럼에도 왜 나는 ‘관행’을 계속 두둔할까? 동시대미술은 ‘미술’이라는 동일한 자장 안에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제작 방식으로 구현된다. 홀로 작업하는 이가 절대 다수라는 현실로 인해 100명을 고용한 공장형 작가의 존재감이 평가절하되지 않는 것도 이런 다양성을 미술계가 시인하고 수용했기 때문이다. 공장형으로 제작되건 소수의 조수가 완성하건 작가 개인의 아이템을 남의 손으로 구현하는 점에선 차이가 없다. 전자는 체계적으로 수행한 것이고, 후자는 영세하게 운영했다는 차이만 있다. 단품요리와 뷔페는 규모와 제작 방식이 다르고 맛도 다르지만, 미각과 허기를 충족시키는 음식이라는 점에선 같다. 뷔페보다 단품요리를 훨씬 선호하는나 같은 사람마저 뷔페 애호가를 평가절하하거나 음식이 아니라고 부인하진 않는다.

반이정, 조영남 대작사건을 읽는 법 | ’관행‘을 해명한다, 미술세계

 

이름 석 자만 꺼내도 일반인까지 알법한 수두룩한 유명 화가들의 명단을 꼭 늘어놔야 할까? 이건 여론과 언론을 혼란에 빠트릴 테고, 무엇보다 지목된 화가와 그와 연루된 갤러리가 사실을 축소하거나 부인할 게 분명하며 법적 대응까지 거론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장막 안의 사실을 장막 밖의 사람이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까. 바로 이 점이 ‘관행을 변호하는’이의 고충이다. 조영남 대작 소동을 맹공하는 평론가와 언론은 이런 고충을 감당하지 않고 내려놓은 채, 여론과 언론이 유구하게 믿어온 미술가의 ‘이상’이라는 방패의 뒤에 숨어, 주문-제작 관행이라는 ‘현실’과 조영남이라는 개인을 맹공하고 있다. 무지하고 불공정하다.

반이정, 조영남 대작사건을 읽는 법 | ’관행‘을 해명한다, 미술세계

 

‘관행’에 대한 긴 글을 읽다보면, 진중권씨와 반이정씨가 조영남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일반관객이나 작가들과 꽤 다른 지점에 있다는 것이 발견한다. 73.8%의 국민이 조영남 사건을 사기로 본다는 여론조사에 대한 언급이 두 필자의 글 모두에 나온다.

왜 73.8%는 조영남씨가 사기꾼이라고 생각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진중권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대중과 언론이 빠져있는 본질주의의 오류’에서 비롯한 여론조사 결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기억을 비추어보면, ‘조영남 대작사건’에서 가장 기가 찬 부분은 그림 한 점당 보수를 10만원을 줬다는 부분이었다. 조영남씨의 그림가격이 호당 30-50만원임을 감안한다면, 최저임금을 시간당 계산한다하더라도 지나치게 적은 액수였다. 나중에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조영남씨의 말이 있긴 했지만, 사건 초반기에 기사에 포함된 내용이었다. 당시 기억으로 대작의 여부랑 상관없이 ‘조영남씨가 엄청난 착취를 한 나쁜 놈이다’라는 인식이 첫번째였다.

조영남씨의 첫번째 변명은 대작은 미술계의 ‘관행’이고, ‘팝아티스트에게는 용인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였다. 미술계를 모든 미술관계자를 지칭할 경우, 조영남씨의 말은 전체 미술계를 엿먹인 것은 분명하다.

‘관행’이라는 것이 ‘공공연하게 실행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관행’이라는 언어 자체는 ‘일반적이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반이정씨의 언급처럼 미술계의 절대다수가 혼자서 작업을 한다면, 이것은 전체 미술계의 ‘관행’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몇몇 유명화가들’의 언급처럼, ‘대작’이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것은 들어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대형 갤러리가 관여하는 ‘상업미술계’의 ‘관행’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정확한 표현이다. 조영남씨의 행위가 사기라고 동의한 73.8%는 이 사건 안에서 대작이 가능한 현대미술의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당연시되는 불평등과 불공정을 보는 것이다. 조영남씨는 자신이 한 행위가 ‘관행’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그 말은 동시에 초저임금의 노동력착취 또한 ‘관행’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진중권씨는 조수와 어시스턴트에 대해 논문을 쓸 정도의 자료를 ‘조영남 작가에 권고함’이라는 오마이뉴스 기고글에서 제시한다.

 

조수들에 대한 처우가 나쁜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그걸 받고서라도 기꺼이 조수가 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왜? 미국에서 1년에 미대 졸업생이 수만 명이 배출된다. 이들이 졸업하자마자 바로 작가가 되겠는가? 그래서 자립할 때까지 그림도 그리면서 생계도 유지할 자리가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조수를 하면 어깨너머로 이미 성공한 작가의 기법이나 절차, 수완 등을 배울 수 있고, 나아가 예술계에 인맥을 넓힐 기회도 잡을 수도 있다. 실제로 유명 작가의 조수 중에는, 가령 ‘길버트와 조지’를 위해 일했던 채프먼 형제처럼, 나중에 작가로 자립하여 성공한 예도 많다.

진중권, 조영남 작가에 권고함, 오마이뉴스

 

굉장히 익숙한 문구이다. 무급인턴등 이전에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기관들이 이야기하던 말과 왜 이리 닮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비난하던 보수의 노동관과 아주 닮았다. 도대체 자유주의 경제이론과 이 발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진중권씨는 현대미술이 시스템과 싸우기 위해 사용했던 전략적 선택(앤디 워홀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과 고전시대부터 존재해온 장인 도제의 시스템과 상업갤러리의 ‘관행’을 똑같이 ‘관행’이라는 단어로 혼용하고 있다. 글 자체가 진중권씨가 말하는 ‘본질주의의 오류’라고 부르는 의견들에 대한 반론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부적절하다. 글 안에서 조영남씨는 급 현대미술의 상징으로 돌변한다. 그 이유는 하나이다. 조영남씨가 현대미술의 ‘전략’을 따른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효과적으로 현대미술을 엿먹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감탄사가 나올 정도이다.

 

고재열 기자. 걱정 안 하셔도 된다. 만약 이우환 화백이 ‘위증죄’로 기소된다면, 그 때에는 당연히 내가 나설 것이다. 다만, 그런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꼬박 이틀 걸려 어렵게 쓴 글에 20만 독자가 보내준 원고료가 고작 5만원 남짓밖에 안 된다는 냉혹한 현실을 이번에 똑똑히 목도했기 때문이다.

진중권, 조영남 작가에 권고함, 오마이뉴스

 

출력 용지로 39페이지에 이르는 3개의 진중권씨 글 말미이다. 우리나라에 ‘길버트와 조지’, ‘데미안 허스트’에 준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몇 명이나 있을까? 유명 작가의 조수/어시스턴트를 하면서 예술계 인맥에 도달하여 성공한 작가가 되기 위해 박봉은 참아야하는 것인가? 대작이 ‘관행’임을 증명하기 위해 ‘관행’에서 비롯된 부조리는 용인되어야하나? ‘관행’이 존중받아야한다면, 그 ‘관행’에 대해 먼저 점검해야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만약 글을 쓰는 사람이면 원고료가 나오지 않는 것이 ‘관행’인 잡지들에 장차의 명예를 위해서 꾹 참고 글을 올려야하는가? 진중권씨는 왠지 원고료 나오지 않는 ‘관행’은 참지 못할 것같다.  

 

‘관행’의 불합리함이 현실의 문제로 격렬하게 표출되는 순간에, 그것을 미술사의 문제로 전환시키는 대신, ‘대작’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대신, 우리는 이런 미술적 논쟁을 했어야한다.

‘관행’의 정당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과연 존중되어야하는 ‘관행’인가? ‘관행’에 따라 노동착취를 강요한 ‘작가’에게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예술의 자율성을 침해하는가?

 

 

지금, 현재, 이 순간

 

안타깝게도 이 논쟁들의 전쟁터는 회화와 관련된 시장의 영역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미술품의 대부분은 회화이며, 작년 한 해 온갖 언론을 수놓은 미술기사들의 대부분도 회화에 대한 것이다. 여전히 가장 미술시장에서 많이 거래되는 매체가 회화이다. 덕분에 회화는 자주 미술사 안에서 죽어왔으며, 가끔은 현대미술 또는 동시대미술임을 끊임없이 의심받아야 한다. 동시에 그만큼 부활을 많이 한 매체이기도 하다.

대작이 ‘관행’이라고 주장하는 쪽이나 ‘관행’이 아니라고 주장한 쪽이나, 양쪽 모두에서 언급되는 많은 부분들은 개인적으로 꽤나 절망적이다. 반이정씨가 ‘미적 러다이트’, 진중권씨가 ‘본질주의의 오류’라고 부르며 비판하는 진부함이 묻어나는 작가관념이나 작업에 대한 기준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회화에 대한 고전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반이정씨나 진중권씨는 일면, 회화의 영역 역시 현대미술의 영역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같지만, 그들이 인정하는 현대미술에 속하는 회화 혹은 미술에 대한 협소한 생각을 인지시킬 뿐이다. 선험되고 학습된 이후에도 지속가능하고 동시대적일 수 있는 작업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입장이 아닐 터이니, 당연한 것같기도 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존재는 항상 중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들 0.1%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나 현대미술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미술계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일 수도 있는 조수/어시스턴트를 희생시키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동시대성이나 동시대미술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현재 이 모든 상황에 존재한다. 미술사의 다음 단계에서 ‘나 현대’라고 이야기하며 미래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관행’이 지속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고전적인 도제시스템의 ‘관행’과 현대미술이 선행한 ‘전략’을 동일한 ‘관행’으로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현대미술을 논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이 순간,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의 입장에서 작은 바램은 현대미술이나 동시대미술의 미래에 대한 걱정 대신, 구조적인 부조리에 대한 날이 선 비평이나 현상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는 비평을 만나고 싶다. 정말 미술을 사랑한다면.    

 

 

*인용된 글은 ‘대작’이 ‘관행’이라고 주장했던 대표적인 필자인 진중권이 2016년 7월에 오마이뉴스에 올린 조영남 3부작(진중권 기고: 1. 조영남은 사기꾼인가?, 2. 유시민도 모르는 ‘조영남 사건’의 본질, 3. 조영남 작가에 고함)과 반이정이 2016년에 미술세계에 기고한 ‘조영남 대작사건을 읽는 법 | ’관행‘을 해명한다’이다. 이 글들은 수많은 기사의 반대편에 있던 글들이다. 진중권씨의 글은 2016년 7월에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반이정씨의 글은 2016년 6월에 미술세계를 통해서 발표되었다.

 

오마이 뉴스 ‘진중권 기고 : 1. 조영남은 사기꾼인가?’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223712

오마이 뉴스 ‘진중권 기고 : 2. 유시민도 모르는 ‘조영남 사건’의 본질‘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224343

오마이 뉴스 ‘진중권 기고 : 3. 조영남 작가에 권고함’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225714

허밍턴포스트 ‘미술세계, 반이정, 조영남 대작사건을 읽는 법 | ’관행‘에 해명한다’

http://www.huffingtonpost.kr/ejung-ban/story_b_10135980.html

 

 

전:달

http://spaceppong.wixsite.com/spaceppong/single-post/2017/04/12/STAGE-0-%E2%80%98%EC%A7%80%EA%B8%88%E2%8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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