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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석

Luc Jeand'heur : 나는 망각을 기억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2008 I forget to remember to forget1 (le sommeil éveillé du monstre) 1 Luc Jeand'heur(작가) 번역 : 정현 나는 망각을 기억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 잠에서 깨어난 괴물) « 장치들이 포획한 사용법의 가능성을 그 장치들로부터 매번 빼앗아야만 한다. 남용할 수 없음의 남용이야말로 다가올 세대의 정치적 숙제다. »지오르지오 아감벤, 모독, 2005 한국은 물론 서양에서도 20세기란 우울함이 깃든 재앙의 감정을 시대 뒤에 남겨두었다. 개개인은 그만의 방법으로 이 역사의 광기와 죽음을 밀어내겠지만, 신세기의 요동 속에서도 의식을 지닌 젊은 예술가들은 동시대성 속에 내재된 (역사적) 연속성에 현혹되지만은 않는다. 오용석은 이런 시대적 상실과 방황을 확신하.. 더보기
서동진 : 당신의 아름다운 주관성 2007 서동진(문화평론가) 어느 미술평론가는 게이미술(혹은 그의 표현을 빌자면 호모아트(homoart))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그것은 프리아포스(Priapus)의 계보와 아도니스(Adonis)의 계보이다. 이 두 명의 원(原)신화적인 인물이 게이미술의 역사를 종합한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과장이다. 그것은 몇 가지 단서가 붙은 한에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사회에 접어들며 동성 간의 친밀성과 성애적인 관계를 별개의 종(성의 인구학)으로 묶게 되었을 때, 그리고 바로 그런 분류에 따라 자신을 인식하고 체험하고자 발버둥쳤던 이들이 등장한 연후에, 우리는 자신의 환상을 대표할 무엇을 찾게 되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성적인 욕정과 강건함의 화신인 프리아포스와 양성적인 혹.. 더보기
이병희 : 애브젝트, 혼성, 미디어 그리고 향유 2007 이병희(미술평론가) 예전에 제 2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생성파트의 커미셔너였던 베르나르 마르카데의 글에는 아주 긴 제목이 있었다. 그것은 이란 것이었다. 여기서 브리콜라주라는 것은 레비스트로스가 여러 가지 특성이 잘 결부되어있는 하나의 전체라고 정의한 그것이다. 최근의 이러한 혼성은 온갖 미디어(대중 문화 매체 인 영화, 생활 매체인 인터넷 뿐 만이 아니라 심지어 예술까지도) 속에서 가속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받아들일만한 것으로 재영토화되고 있다. 사실 그러한 ‘재영토화’는 비교적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불쾌한 것, 역겨운 것, 폭력적인 것, 낯선 것, 조화롭지 않은 것, 외설적인 것, 무의식적인 것, 소수적인 것 등이 귀환하기는 하는데, 미디어를 통해서‘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정말 환영.. 더보기
청춘 : ARTICLE 2012 아픔은 ‘청춘’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Don't make me sad. Don't make me cry. Sometimes love is not enough and the road gets tough. I don't know why...’ 아침부터 라나 델 레이 Lana Del Rey의 노래 가사가 혀끝에 빙빙 맴돈다. 독일의 바트엠스 Bad Ems라는 낯선 도시에 도착한 지 이제 거의 한 달이 되어 간다. 만 명 남짓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울창하게 우거진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음악을 틀지 않는 다면, 매 시간 마다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와 하루 종일 다양한 새의 지저귐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유일하게 정적을 깨는 것은 한 시간에 한 번씩 지나가는 기차의 금속성 소리다. 대부분의 주민들.. 더보기
수탉들의 싸움 (연출 송정안) 2014 수탉들의 싸움 - 생존의 방식으로 번역된 사랑 연극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니라서, 어쩌다 보게 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긴장이 된다. 미술전시처럼 그냥 편할 때 들어가서 휘익 돌아보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맞춰서 기다려야하고 극장 안에 들어가서도 이미 설치된 무대를 미리 경험하게 되서 일지도 모른다. 전희 같은 순간들이 있다. ‘스페이스 111을 찾아주신 관객여러분 감사합니다....’ 낭랑한 남자의 목소리가 곧 연극이 시작됨을 알린다. 암전. 존(John)은 오랜 연인 사이였던 한 남자(M)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언제까지나 자신을 아이처럼 대하는 M의 태도를 참을 수 없었던 것. 그러던 어는 날, 통근 길에서 자주 마주치던 한 여자(W)가 존에게 말을 걸어온다. 존은 자기도 모르게 얼마 전 헤어진 M.. 더보기
사보이 사우나 (연출 여신동) 2013 연극을 보면서 미장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 사실 꽤나 독특한 경험이었다. 서사에 집중하지 않으면서 볼 수 있다는 것, 이미지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서 흥미롭기도 했다. 마지막에 있었던 연출가와의 대화는 오히려 보는 즐거움을 방해했다. 연출가는 주인공 두 명이 하나의 캐릭터라고 이야기했다. 어떤 양면성 혹은 양면성이 결합하는 어떤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주 거시적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연출가의 말이 그다지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업의 디테일들에 숨어있는 순수한 쾌락적 측면들은 연출가가 말한 것들만을 표현한다고 했을 때는 과도한 것들이다. 우선 두 명의 캐릭터는 하나의 분리된 모습이라기 보기에 각각 생명력과 너무 많은 서사가 함축되어 있다. 공연을 보는 도중, 내.. 더보기
SALO : 주인의 비열한 규칙들 2009 «'소돔120일‘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에 영감을 주었다. 이 영화는 합의하지 않은 희생자들에게 가해지는 공포와 잔혹을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 영화가 지닌 예술적 가치와는 무관하게, ’살로, 소돔의 120일‘을 본다는 것은 관객에게는 일종의 사디즘적인 공격이 되어,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합의한 희생자로 변모한다.» 에스텔라 V. 웰든, 사도마조히즘, 2002 관객이 사디즘에 공격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객이 합의한 희생자로 변모한다고 지적하지만, 사실은 동화를 통해 합의하지 않은 가해자, 공범자, 목격자로 전환된다. 관객이 느낄 수 있는 혐오감이나 죄의식은 희생자 혹은 피해자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나 정서가 아니다. 희생자가 느꼈을 .. 더보기
쾌락 PLEASURE 2009 양자역학에서 한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어느 범위 내에서는 입자의 측면에서 보고, 다른 범위 내에서는 파동의 측면에서 본다. 여러 물리적 양을 측정한 결과가 반드시 확정된 값을 가지는 것이 아니며, 서로 다른 여러 값이 각각 정해진 확률을 가지고 얻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양자역학이 기본적으로 제시하는 룰은 불확정성의 원리(Uncertainty Principle)이다. 이런 전제 안에서 획득할 수 있는 진실은 오직 불확정적이라는 것이다. 쾌락과 죄의식, 불안과 공포, 죽음과 폭력은 상보적임과 동시에 대립적인 것이다. 작업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지독한 의심 속의 불안, 불안의 쾌락, 죽음이나 폭력에 대한 공포, 공포에 대한 쾌락, 쾌락에 대한 죄의식, 죄의식에 대한 쾌락 뿐은 아니다. 그런 .. 더보기
Stage IV : 이탈리아식 오페라 하우스 2009 현대는 분명하게 극장 안의 극장, 무대안의 무대로 이루어져 있다. 극악스러운 행위와 음란한 행위도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미디어를 통해 여과된 형태의 간접경험은 대상들이나 행위들에 대한 왜곡된 쾌락을 장려한다. 반면, 이러한 경험들이 직접적인 경험으로 다가올 때, 그것을 접한 대상은 트라우마적 징후에 노출된다. 그것은 안전하지 않으며, 안전한 세상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단서가 된다.이탈리아식 오페라 하우스에는 배우들, 악단들, 일층에서 바라보는 관객들, 사적인 룸을 지니고 관찰하는 관객들 그리고 귀족과 평민을 나누는 관객석들이 있다. 이런 구조 안에는 관객을 관찰하는 관객이라는 독특한 지위가 발생한다. 스스로 관객이지만 그들은 다른 관객들을 관찰하는 쾌락을 얻기 위해서 오페라 하우스에 등장한다. 연기.. 더보기
관능 SENSUALITY 2015 이미지를 보면서 잡아내고자하는 것을 망각할 때가 많다. 내가 실제로 느끼는 관능은 이미 이미지 위에 있지 않다. 오히려 관능은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신체의 표피와 그것을 접촉할 때 존재한다. 신체의 이미지를 볼 때마다, 혹은 그것을 재현할 때마다, 가장 쉽게 하는 실수는 그 보이는 표피의 이미지를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결국 본인이 진정 원하는 것이 신체의 표피가 아니라는 것을 혼돈하곤 한다. 카메라를 통해 반사된 이미지에는 이미 관능이 휘젖고 난 뒤, 감정적으로는 소진된 감각만 남아 있을 뿐이며, 그 소진 이후에 남은 다른 감각만 남는다. 그것은 보통 흔적을 남기는데, 내가 포착할 수 있는 것은 그 흔적 뿐이다. 발목을 움켜싸는 손, 털 위에 머무는 햇빛, 욕정으로 가득찬 입속의 손, 혀 끝에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