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페인팅은 잘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고를 응축하는 프로세스의 절정이며, 결정적인 순간들의 환희, 클라이막스 같은 것이다. 나는 여전히 마를렌 뒤마가 ‘페인팅은 전위가 아니라, 후위다’라고 이야기한 그녀의 자신감을 신뢰한다. 전위가 아니라 후위이기 때문에 좀 더 사색적이고 그만큼 복잡하고 깊이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페인팅은 미학적으로 완성된 스타일의 반복이 아니다. 끊임없이 사고를 재정립하는 조합과 해체의 과정이며 그것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지를 재구축 재편집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일종의 유행처럼 치부된다. 하지만, 이미지를 재구축하는 것은 사고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이미지의 영역은 결과의 영역이 아니라, 작업 안에서 과정의 영역이다. 과정의 영역이라는 의미는 이미지 안에서 새로 구성되는 레이어들은 지워지거나 수정되는 대신 그 시간의 겹처럼 겹겹이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좌충우돌을 산만함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산만함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작업의 본질, 그리고 내가 세상을 흡수하고 재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과정성을 보여준다는 것은 과정성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정성의 유의미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에게 이 프로세스는 언어와 이미지를 넘나들며, 그 사이의 이합집산과 편집, 수집과 버림의 반복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그 끝에 페인팅이라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관계에 대해, 욕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작업의 결과물들은 온통 복잡하고 난해할 수밖에 없다. 나는 자주 신화적 형상, 실존 인물, 도상적 재현 등 사회에서 익숙하게 통용되는 코드들을 채집하여 만들어 내는 이미지 속에 기입해 놓는다. 강한 상징적 코드를 다시 뒤집어 구축한 환상은 오히려 익숙한 코드의 생경함을 산출해낸다. 사실, 이 생경함은 오히려 솔직한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단순한 사물조차 전혀 단순하지 않다. 내가 상상하는 전시는 그 복잡함들이 서로 간섭하면서, 그 복잡다단한 과정의 필요성 혹은 그 과정에서 작가를 괴롭히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의 에너지 그 자체이기를 바란다. 사랑에 대해 어떤 사람은 ‘사랑한다’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한 권의 책을 써도 표현하기 힘들다. 내 작업은 표현의 불가능성 혹은 어려움을 인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얻어지는 어떤 것들에 대한 서사시이다.

 

20140903

'STATEMEN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를 위한 셋 Three of Us 2014  (0) 2017.04.03
공백 空白 2006  (0) 2017.04.03
이탈리아식 오페라하우스 초안 2009  (0) 2016.06.04
망각 OBLIVION 2010  (0) 2016.02.05
PORNOGRAPHY 포르노그라피 2007  (0) 2016.02.05
ELIZABETH SHORT 엘리자베스 쇼트 2007  (0) 2016.02.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