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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 空白 2006 자주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공백을 느낀다 정지된 순간에 파고드는 미묘한 감정선 환타지같은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 내가 말하는 공백은 완전히 무엇이 비어있다는 것보다는, 모든 것은 존재하는데 결계처럼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것에 더 가깝다. 엄밀히 말하면 그 공백은 사이나 틈에 가깝다. 들뢰즈의 주름일수도 있다. 그것은 명확하게 나에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공백은, 내가 느끼는 순간, 존재하는 것이며, 시간이 정지한 것같은 그 순간에 나는 일종의 묘한 감정, 평온함, 혹은 슬픔, 애조를 느낀다. 나는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은 아니다. 단지 무형의 어떤 것에 지배를 받는다.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에서 가끔 나오는 슬로우의 순간들. 뭔가를 보고 있으나, 다른 것을 .. 더보기
안소현 : 퇴폐미술전 2016 오용석의 그림이 위험한 것은 '회화에 대한 고민'을 앞세워 동성 간의 밀애나 신체에 대한 은밀한 탐닉으로 유도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바탕 위에 섬세한 결을 드러낸 얇은 베일의 노랑, 흘러내린 노랑, 흩뿌려진 노랑에 홀려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눈은 어느새 나뒹구는 신체의 근육, 성기, 엉덩이, 체액에서 헤매고 있다. 이런 부류들이 욕망의 탐닉을 적절히 은폐하기 위해 흔히 쓰는 수법은 자신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상의 재현보다는 '순수한 감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서동진이 오용석의 그림에 대해 쓴 글이 전형적인 예이다.. "나는 그가 선호하느 색채들이 궁금하다. 그가 집요하리만치 모든 그림 속에 집어넣고 있는 흰색과 검은색의 밀도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재현하는 대상들을 다른 감각적 체.. 더보기
보수의 만족 20160220 *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광주에서 압승했던 것에 대한 글. 많은 사람들이 광주의 배반이라고 여겼던 기묘한 상황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갈라지면서 광주에는 드디어 야당이 생겼다. 민주당의 전통이 광주에 내려오는 동안, 다른 선택지를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생겼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지역의 사람들은 진정 만족스러울까. 특히 대구. 질문을 다시 던져야겠다. 보수와 진보. 이렇게 세상을 단순히 두가지로 바라볼 수 있나. 대답은 NO이다. 정치적 성향으로서 보수와 진보의 진영이 하나의 줄기로 위치하기에 정치적 경험이나 역사는 우리나라 정치인에게 불충분하다. 오히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계층의 영향이 훨씬 큰 현재이다. 정치는 보통 그를 지지하는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 더보기
PHENOMENAL WORLD 최요안 (2016.6.9 - 7.1 갤러리 생각상자) Untitled 1-6, Photomontage & Oil Painting, 241x234cm, 2016 이미지로 폭력에 대항하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폭력성을 정확하게 재현한 이미지로 폭력에 대항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그의 작업에서 그 역할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작업은 ‘Untitled’ 시리즈이다. 그가 줄곧 다루어오던 폭력성이 거의 추상적인 수준에까지 밀어붙여져 있다. ‘분노하라’의 형상이 역사의 기억을 건드리면서 관객에게 과거를 소환하게 하거나 ‘해처리’가 군인이라는 인간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Untitled’ 시리즈에서 대상들은 순수하게 폭력적인 가해자의 형상으로 태어난다. 다른 작업들이 가까이 다가갔을 때, 원래의 형상이 사라지면서.. 더보기
합체 B-CONE (2016.4.8 - 28 뽕뽕브릿지) ‘분리 Seperation’ 송아지에서 분리된 한쪽 다리가 전시장에 걸려있고, 그 앞에는 다리가 하나 없는 송아지가 절룩거리며 걷고 있는 영상이 있다. ‘합체 Combination - Triptych’ 분리되어 있던 고깃덩이의 일부들이 천천히 결합하여 부자연스럽게 서있는 송아지와 비슷한 형상이 영상 밖의 관객을 응시한다. 두 개의 작은 방에는 쓰러져 있는 의문스런 고깃덩이가 서서히 일어나 송아지와 고라니처럼 보이더니, 급작스레 해체되며 앵글의 밖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 버린다. 분리와 합체는 서로에 반대되는 단어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프로세스 위에 있는 단어이다. 좀 더 기술적으로 발전한 근미래에서는 이 단어를 신체와 생명에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아주 기계적 프로세스에 적합한 언어이다... 더보기
이탈리아식 오페라하우스 초안 2009 «'소돔120일‘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에 영감을 주었다. 이 영화는 합의하지 않은 희생자들에게 가해지는 공포와 잔혹을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 영화가 지닌 예술적 가치와는 무관하게, ’살로, 소돔의 120일‘을 본다는 것은 관객에게는 일종의 사디즘적인 공격이 되어,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합의한 희생자로 변모한다.» 에스텔라 V. 웰든, 사도마조히즘, 2002 관객이 사디즘에 공격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객이 합의한 희생자로 변모한다고 지적하지만, 사실은 동화를 통해 합의하지 않은 가해자, 공범자, 목격자로 전환된다. 관객이 느낄 수 있는 혐오감이나 죄의식은 희생자 혹은 피해자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나 정서가 아니다. 희생자가 느꼈을 .. 더보기
명쾌함에 반대한다 20160407 회화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큐레이터들 혹은 비평가들의 입을 통해 쉽게 듣는다. 사람을 자주 만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몇 년 사이에 꽤나 여러 번 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에 전시서문을 부탁하려 했던 사람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의 입장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꽤나 머리가 복잡해진다. 회화가 어렵다는 말은 회화를 읽기 어렵다는 것인가, 회화를 통해서 글을 쓰기 어렵다는 말인가. 회화가 어렵다는 말은 회화를 읽기 싫다는 이야기인가. 혹은 회화를 현대적으로 읽기 어렵다는 이야기인가. 회화가 어렵다는 말은 회화라는 매체가 이미 예술적인 의미에서 현대적 추동력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인가. 회화가 어렵다는 말은 회화를 통해 그럴 듯하고 좋은 글을 쓰기 어렵다는 것인가. 회화가 어렵.. 더보기
서울바벨 201602 바벨 BABEL 바벨이라는 이름은 순전한 우연으로 'babble(말을 더듬거리다)'이라는 영어 단어와 발음이 거의 같은데, 공교롭게도 뜻마저 비슷하다. 바벨은 신이 사람들을 혼란시켜 제각기 다른 말을 쓰도록 한 장소다. 바벨이라는 명칭은 히브리어로 '신의 문'이라는 뜻이다. 창세기 10장에는 '세상의 첫 용사'인 님로드(니므롯)가 세운 도시라고 되어 있다. 또 창세기 11장은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고 말한다.사람들은 '시날 평지'를 정해 탑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신은 그 탑을 내려다보고 인간의 오만함을 드러내는 상징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신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했.. 더보기
고국 떠나 떠돌던 '파란 눈의 노숙인' 쓸쓸한 죽음 (종합) 연합뉴스 2015.8.10 외국인 노숙인 사망후 절차 규정없어 지자체 '난감'서울시 파악 외국인 노숙자 14명…대부분 불법체류자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수년 전 한국에 들어와 일정한 주거 없이 떠돌던 외국인 노숙자가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신원은커녕 국적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아 장례 등 사후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다.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서울 중랑구 신내동 서울의료원에서 60대로 추정되는 외국인 '토머스'씨가 지병인 담도암으로 치료를 받다 숨졌다. 토머스 씨는 생전에 자신을 이스라엘 출신이라고 밝혔다. 레바논, 미국, 체코 등을 돌아다니다 5년 전 영어교육 사업을 하려고 한국에 왔는데 사업이 기울며 불법 체류자로 전락해 길거리 생활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반포 지하상가 등지.. 더보기
망각 OBLIVION 2010 '위험한 관계 Dangerous Liaisons'의 발몽은 트루베 부인과 헤어지기 위해, 'It's beyond my control' 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안다. 세상 안에, 인간의 마음 안에 어쩔 수 없는 본능과 욕망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은. 단지, 그것이 당당한 이유가 되지도, 시의적절한 변명이 아니라는 사실마저 잊어버릴 수는 없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시의부적절한’ 것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는 없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고,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망각. 망각은 기억보다 항상 유혹적이고, 항상 쉽다. 사실이 진실에 가깝다는 믿음은 맹목적이다. 사실과 사실 사이를 상상한다. 틈에 숨겨진 맥락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드러나는 것들은 항상 모든 것의 1%..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