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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NOGRAPHY 포르노그라피 2007 나는 내 속에 도사린 어떤 괴물의 존재를 느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를 빌려 그 어떤 일도 해치울 수 있을 전능한 괴물이었다. 메마른 자부심. 응고된 흥분. 엄격한 자기 단속. 그리고 공허함. 그러고는? 그리고 또 뭐가 있는가? 미사가 막 끝이 났다. 나는 몽롱한 상태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피곤했다. 어서 이 교회를 벗어나서 집으로, 왔던 모랫길을 되짚어 포부르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눈이 무겁게 내리 감겼다. 그런데 문득 무엇인가, 흐릿하게 풀린 내 시선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유혹적이고도 당당한 그것. 그 놀라운 물체는 우리가 어지러운 꿈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어떤 장소들과 닮아 보였다. 둘레에 베일이 쳐져 있어 안쪽이 들여다보이지 않고, 들여다보고 싶어도 가까이 가지 못하는 탓에 견딜 수 없는 갈망으.. 더보기
40년 동거한 여고 동창생의 비극(종합) 연합뉴스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고등학교 졸업 이후 40년간 동거하며 우정을 과시했던 여고동창생 2명이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한명은 최근 암세포가 온몸으로 전이돼 숨졌고 다른 한명은 친구의 가족과 경제적인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1일 부산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30일 오전 6시 40분께 부산 북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 A(62·여)씨가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새벽 2시께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 옆 동 20층에 올라가 복도 창문을 열고 투신했다. 아파트 복도에서 A씨의 점퍼와 운동화가, A씨 바지 주머니에는 '시신을 기증해주세요'라는 내용의 유서가 각각 발견됐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부산의 한 여상을 졸업한 뒤 동창인 B.. 더보기
ELIZABETH SHORT 엘리자베스 쇼트 2007 Seaching for Clues Ⅰ 쥘리엥 그린과 점심식사. 우리는 블랙 유머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는 어떤 미국 일간지에서 읽은 그 잡보 기사를 인용한다. 센트럴 파크에서 강간, 살해당한 한 젊은 여자가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녀의 핸드백에 일기장이 들어 있었다. 그 전날 일기에서 그녀는 아무 일도 일어나는 법이 없는 자신의 무미건조한 생활을 한탄하고 있었다. 미셀 투르니에 '외면일기'중에서 Elizabeth Short (1927 ~ 1947) 엘라자베스 쇼트의 사건은 오히려 아주 명확하다. 그녀를 죽인 사람은 그것을 즐겼으며, 한 치의 실수가 없다. 범인은 그녀를 보관하고, 중요하고 보존가치가 있는 것을 우리와 다르게 생각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내장이다. 거기에는 필연성이 존재한다. 그는 그녀의.. 더보기
JOEY STEFANO 조이 스테파노 2007 SEARCHING FOR CLUES Ⅱ 그보다 뒤늦게 나온 텍스트인 발정한 비너스에서 여주인공은 보다 총명하게 남창의 뚜쟁이 역할을 맡는다. 우연히 그녀는 열두 살 먹은 소년인 어린 "천사"를 얻는데 그녀는 그를 성의 세계에 입문시키고 정기적으로 이용하며 그런 다음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매춘을 시킨다. 그녀는 자신의 세자르가 모든 남편의 부인이 되고 모든 부인의 남편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판매자와 상품,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배와 복종을 혼동하고 그것과 함께 성적 차이를 혼동하는 육감적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성적 차이가 확고한 관념이 되어가던 시대에 포르노그라피 텍스트와 여주인공들은 기이하게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린 헌트 '포르.. 더보기
탁영준 : 옷과 살갗 사이 ARTINCULTURE 2015 옷과 살갗 사이 Between Gewant und Skin 지난 달 열린 작가 오용석의 개인전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회화작품들과 낱장의 출력물들이 뒤섞여 있었다. 각종 미디어에서 수집한 이 이미지와 자료들을 훑어보며 작가의 감정과 마주하는 것 같은 내밀한 느낌을 받았다. 도착적인 게이 포르노 이미지들, 영화 용어 해설 텍스트, '40년 동거한 여고 동창생의 비극적인 죽음'에 관한 기사등 작가에 대한 단서 같은 자료들이 흩어져 있다. 그 사이사이에는 형광 보랏빛 얼굴을 그린 , 흘러내리다가 굳은 반투명한 연분홍빛 액체의 흔적에서 두 남자의 형체가 엿보이는 , 열대우림 같은 수풀 위에 샛노란 물감이 분출된 등 감정과 욕망이 덩어리지거나 폭발하는 듯한 회화 작품들이 걸려 있다. 작가 오용석은 자신의 회화 작업.. 더보기
신은진 : 사랑에는 이름이 없다 2015 "결국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신체의 표피가 아니라는 것을 자주 까먹어요. 이미지에는 이미 관능이 남아 있지 않죠. 이미 관능이 휘젓고 난 뒤 흔적만 남아 있는데 그것도 까먹을 때가 많아요. 관능은 신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신체가 발아시킨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을. 그것은 찰나에 가깝고 시간에 대한 이야기나 감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작가 에세이, '사랑에는 이름이 없다' 중) 여기 욕망이 있다. 그리고 그 욕망의 표피를 감싸 안은 고독이 있다. 욕망은 구체적인 형체가 없기 때문에 형태를 그리려다 보면 어렴풋한 느낌마저 손가락 사이로 허무하게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글도, 회화도, 막연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를 지면에 옮기거나 캔버스에 물감을 묻히는 행위에서 그 생명력은 상상력에 미치지 못하는.. 더보기
이병희 : 축제 2013 이병희(미술비평) 석양이 지는 해변에 서있는 소년의 모습을 바라보는 한 노인이 있다. 해변인데도 흰색 중절모에 흰색 양복에 흰색 구두를 신고 의자에 누워있다. 땀을 흘리고 있고, 좀 더 젊게 보이려고 한 회분이 땀에 지워져 내리고 있다. 태양은 수평선 아래에 걸쳐 사라지기 전, 가장 아름다운 빛을 내뿜고 있고, 소년은 그 빛을 모두 한 몸에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그가 페스트가 창궐하기 시작하는 베니스를 빠져나가지 않은 것은 오직 그 소년 때문이다. 이미 자신의 몸이 수명이 다해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젊음의 광휘를 맛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두컴컴한 뒷골목을 따라가면서도, 긴장과 동시에 행복감을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기침할 때마다 손수건에 묻어나는 선혈을 보면서도, 오히려 .. 더보기
장파 : Re 보내지지 않은 편지 2013 장파 (아티스트) 과잉된 사랑Excessive Love 그의 작업 전반에는 사랑과 욕망의 구조적 관계 및 그것들에 의해 파생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있다. 욕망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싶은 열망. 작가는 그것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환상과 아름다움의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그러나 환상의 영역으로 들어간 작가는 다시 그 속에서 사랑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왜냐하면, 환상은 욕망이 실현되는 시나리오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라캉 정신분석에서 환상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욕망할 수 있도록 해주는, 혹은 욕망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하나의 틀로서 기능한다.'하였듯이. 그는 욕망의 심층으로 들어가 그것의 근원적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표면에서 환상의 환영이 만들어내는 가능성의 영역을 이야기한다. .. 더보기
정현 : 몽상, 카프카의 세계로 ARTINCULTURE 2011 정현 (미술평론가) 현대문화에서 B급 정서 또는 '오타쿠'는 이중적으로 소비된다. 하나는 주류문화를 거부하는 하위문화의 주체로서의 특권으로 나타나고 다른 하나는 반사회적인 고립된 인물들이 모인 '나쁜 취향'의 공동체로 인식되는 경우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러한 하위문화의 이중성을 상품화하고 유행의 전위로 출격시킨다. 엽기적이고 괴기한 '하위문화적 이미지'가 하이패션의 일부와 꼴라쥬되는 현상은 모든 것을 욕망화 하는 트랜드의 힘을 과시한다. 결국 트랜드란 여러 의미로 다수의 논리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하위문화라고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들도 더 이상 소수로 불리는 희생양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유행이 비단 상품의 세계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현대미술에서도 엽기, 비이성, 광기, 괴물, 부조리,.. 더보기
김만석 : 밀림의 왕자 2011 김만석(미술평론가) 1. 이미지 생태계 오용석의 회화는 밀림이다. 회화와 밀림을 등가로 놓았다고 해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아니, 그의 회화를 밀림으로 은유했다고 해서 정말로 밀림이 아니거나, 회화는 회화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익숙한 농담으로 간주할 수 없다. 회화에 대한 반성이 회화에 깃든 환상을 걷어내는 데 있었다면, 오히려 오용석의 회화는 회화가 지닌 마법들을 보다 풍부하게 활용함으로써 이미지의 밀림을 정초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밀림이 갖은 초목들과 파충류, 갑각류, 포유류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생태계가 자유롭게 혹은 그 내적 원리에 따라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면, 오용석의 회화를 밀림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진술은 서로 다른 유적 질서를 가지고 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