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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퇴폐 예술과 말랑말랑한 미래
등록 :2016-07-28 18:34수정 :2016-08-09 14:33
박보나 / 미술인
한두 해 전에 인터넷 배달 음식 회사의 광고를 재밌게 봤다. 배우 류승룡이 명화를 패러디하는 콘셉트로, 명화 속 인물들이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해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내용이었다. 그중에 19세기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인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63) 속의 인물들이 치킨을 배달시켜 먹는 장면이 있었는데, 치킨을 신나게 받아 먹는 여성의 여성스럽고 단정한 옷차림이 인상적이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두 쌍의 커플이 시내가 흐르는 숲속에서 한가롭게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처음 발표되었을 때, 관객들과 비평가들에게서 매우 ‘퇴폐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큰 비난을 받았더랬다. 당시 관객들이 불편해했던 것은 그림 중앙에서 옷을 잘 차려입은 부르주아 남자들 사이에서 혼자 옷을 벗고 앉아 있는 여성의 모습과 그녀의 시선이었다. 이 여성은 당대의 실존 인물이었던 빅토린 뫼랑으로,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관객과 또렷이 눈을 맞추고 있다. 이전의 회화에서 누드의 여성들은 대체로 신화 속 상상의 인물이었으며, 그녀들을 향한 관객의 욕망적 응시가 껄끄럽지 않게 적당히 수줍게 눈을 아래로 내리뜨고 있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 관객들은 자신들의 관음적 시선을 조롱하는 듯하며, 오히려 옷을 잔뜩 차려입고 옆에 앉아 있는 남자들을 위선적이고 우스워 보이게 만드는 뫼랑의 선명하고 선선한 시선을 불쾌해했고, 이 언짢은 그림을 ‘퇴폐적’인 졸작으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원근법을 파괴한 회화로서의 형식적 도전과 함께, 여성의 주체적 응시를 표현한 ‘좋은’ 미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덕적, 형식적 관습의 범주를 깨려는 예술적 시도는 자주 퇴폐로 폄하되어 억압받고 비난받았다. 하지만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처럼, 익숙함을 깨트리는 작업들이 세상에 좀 더 유연하고 훨씬 더 흥미로운 ‘미래적’ 관점을 제시한다. 20여년 전, 가부장적 제도에 저항하는 자유분방한 여대생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즐거운 사라>로 인해 음란물 유포죄로 구속된 마광수 교수는, 그의 또 다른 소설 <자궁 속으로>에서 ‘퇴폐’소설을 쓴 죄목으로 구속되는 주인공 박민우의 입을 빌려 말한다. “혐오스러운 것을 보여주는 것은 문학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입니다. (…) 아름다운 것만 그리면 실체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 혐오스러운 것을 보여주는 것이 죄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만 포장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소설의 목적은 금지된 것을 파헤치는 것이고,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요,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꿈꾸기입니다.”
<퇴폐 미술전> 전시작_ 오용석, 빛나는/빛 Shining 91×65㎝ oil on canvas 2016.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4323.html#csidx5f067d6c3e2301191080fa928846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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