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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ES

서울바벨 201602

바벨 BABEL

 

바벨이라는 이름은 순전한 우연으로 'babble(말을 더듬거리다)'이라는 영어 단어와 발음이 거의 같은데, 공교롭게도 뜻마저 비슷하다. 바벨은 신이 사람들을 혼란시켜 제각기 다른 말을 쓰도록 한 장소다. 바벨이라는 명칭은 히브리어로 '신의 문'이라는 뜻이다. 창세기 10장에는 '세상의 첫 용사'인 님로드(니므롯)가 세운 도시라고 되어 있다. 또 창세기 11장은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시날 평지'를 정해 탑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신은 그 탑을 내려다보고 인간의 오만함을 드러내는 상징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신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했다. 결국 사람들은 탑을 끝까지 쌓지 못하고 온 세상에 흩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벨 [Babel] (『바이블 키워드』, 2007. 12. 24., 도서출판 들녘)

 

 

창세기의 ‘바벨’과 우리가 땅을 딛고 있는 ‘서울’이 맞물린 이 조합은 이상하게도 매혹적이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중인 예술 플랫폼 총 17개 팀과 그들과 관련된 70여명의 기획자와 작가가 이 전시에는 참여한다. 그 규모와 에너지는 사실상 작은 비엔날레를 연상시킨다. 혼란스런 불협화음을 기대한 사람이나, 어수선할 것이라고 상상했던 사람들은 막상 전시를 보면 실망할지도 모를 정도로 디스플레이는 자리를 잘 잡고 있다. 각 예술플랫폼은 일종의 부스 개념의 공간에서 각자의 플랫폼과 관련된 작가들을 다시 디스플레이 되는 방식으로 전시는 구성되어 있다. 흥미롭게 바라본 것은 플랫폼과 플랫폼 사이의 경계가 상당히 오픈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벽이나 단들도 폐쇄적인 부스 대신 관람할 수 있는 하나의 오브제로 설치된 부분에서 기획자의 섬세함이 엿보인다.

 

전시장의 초입에서는 콜레라마 WITH 굿판의 경쾌한 몸짓이 시선을 잡는다. 입구부터 설치된 큰 스크린과 그 앞에 놓인 녹색 우유박스 관람석들은 처음부터 관람객에게 미술 작업을 보는데 너무 심각하지 말라고 최면을 거는 것 같다. 그 영상을 보고 동선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각 예술플랫폼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작업들을 만날 수 있다.

 

서울바벨은 머뭇거리거나 웅얼거리지 않는다. 작업하는 입장에서는 작업들이 발산하는 무겁지 않은,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에너지를 묘한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미술적 젊음을 느껴보고 싶다면 꼭 봐야할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