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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TER

사보이 사우나 (연출 여신동) 2013




연극을 보면서 미장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 사실 꽤나 독특한 경험이었다. 서사에 집중하지 않으면서 볼 수 있다는 것, 이미지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서 흥미롭기도 했다. 마지막에 있었던 연출가와의 대화는 오히려 보는 즐거움을 방해했다. 연출가는 주인공 두 명이 하나의 캐릭터라고 이야기했다. 어떤 양면성 혹은 양면성이 결합하는 어떤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주 거시적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연출가의 말이 그다지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업의 디테일들에 숨어있는 순수한 쾌락적 측면들은 연출가가 말한 것들만을 표현한다고 했을 때는 과도한 것들이다. 우선 두 명의 캐릭터는 하나의 분리된 모습이라기 보기에 각각 생명력과 너무 많은 서사가 함축되어 있다. 공연을 보는 도중, 내가 생각했던 것은 연출가 혹은 누군가가 경험한 캐릭터들이 각각의 인물에 복합적으로 결합된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연출가의 상상적 공간 혹은 경험의 공간에서 일어난 일상들의 파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공연에 결합되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즐거웠던 것은 육체 혹은 신체에 대한 기본적인 관능이 소거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오히려 관음을 자극하는 형태를 따른다. 인물들은 보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신체를 숨기지는 않으나, 조심스럽게 감춘다. 결과적으로는 포르노그라피와 다른 형태의 관능을 전달한다. 초반과 후반부의 미장센과 다르게, 보다 역동적인 과정으로 보여지는 면도의 과정 혹은 살인의 과정은 역설적이게도 관능의 절정에 이른다. 살해 혹은 절단되는 인물은 처음에 등장할 때부터 신체를 분절하는 패티쉬적인 복장으로 등장한다. 옷을 벗는 그의 행위는 일종의 의식과 같으며, 그 혹은 상대에 대한 관능을 자극하기 위한 고착된 동작을 한다. 그의 행위는 자신의 만족과 더불어 보는 이의 응시를 충족시켜야하는데, 여기서 그 상대는 인도인이라고 짐작한다. 면도의 과정은 인도인이 그에 상응하는 리액션을 하는 것이라 보여진다. 인도인의 마사지 혹은 면도는 단순하게 또다른 나를 파괴하는 과정이 아니다. 단순히 파괴하는 과정이라기에는 너무나 많은 과정을 가지고 있고, 인도인의 캐릭터는 모든 과정을 순수하게 즐긴다. 개인적으로 볼때 극에서 인도인은 그의 살가죽을 벗겼고, 거기에 다시 화장을 하고 다시 살아나기 위한 의식과 더불어 자신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포지션을 하고 있는 상대를 재창조한다. 그것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인도인은 상대의 육체를 파괴한다. 개인적으로 심하게 오독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인도인이 실행하는 행위의 패턴은 내가 생각하는 연쇄살인범의 집착과도 너무나 닮아 있다.

 

덕분에 마지막의 긴 미장센은 나에게 좀더 우울한 풍경이었다. 그들의 포즈는 우울했으며,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관객에게 던지는 시선이 아니라, 죽은 자의 관조에 가깝게 느껴졌다. 마지막 미장센이 너무나 길었던 까닭에 연출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잠시 사고하게 만들었다. 강렬하고 미술적인 퍼포먼스 이후에 마치 정리된 애도의 사진처럼 한명씩 자리잡는 모델들은 각각의 의지에 의해 위치한다기보다는 그 곳을 컨트롤하는 사람, 인도인 혹은 다른 권위자에 의해 위치지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인도인이 신체의 일부를 원하는 자리에 위치 지움과 같은 방식으로 모델들은 각각의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그들이 앞에 있었던 퍼포먼스의 다른 희생자인 것처럼 보여진다. 마지막 말미에서 사보이 사우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로 변한다.

 

이미지적 서사가 완성되기 이전의 순간까지가 ‘사보이 사우나’는 아주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다. 서사를 완성시키려는 욕구는 이미지 사이의 당위성과 개연성을 찾게 하고,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음울한 살인의 추억같은 것이 되었다. 물론 그 안에서 발현하는 쾌락이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접하는 육체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롭다는 것이어서 나름 즐길만한 것이었다. 연출가의 말처럼 단순한 층위에 있다고 보기에는 ‘사보이 사우나’는 좀 더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내가 바라보는 일종의 숨겨진 내러티브가 온전히 의도된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신체 특히 남성의 신체에 대한 이야기가 이런 방식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는 것 자체, 주인공이 인도인인 탓에 언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시점. 그래서 연극 혹은 공연의 언어적인 차원이 배제되면서 이미지화하는 과정 같은 것은 미술하는 입장에서는 신선한 자극같은 것이었다. (오용석 2013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