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전시는 드랙(drag)이라는 퀴어 정치학의 개념을 중심으로 이상한(queer) 작품들을 불러 모은다. 일반적으로 드랙은 드랙킹이나 드랙퀸처럼 반대편 젠더의 옷을 입고 그/녀들의 행동을 과장되게 따라하는 성소수자들의 유희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전시는 퀴어를 주제로 한, 또는 퀴어한 존재들을 형상화한 퀴어 미술을 이야기한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퀴어’란 자신을 성소수자로 정체화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젠더 등 어떤 규범적 정체성을 위반하는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하는 말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드랙’은 단지 여장남자와 같은 크로스드레싱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더 나아가 사물과 인간, 일상과 예술, 화이트큐브와 서브컬처 사이를 넘나들고 변환시키는 다양한 형상적 시도들이다. 미리 주어진, 통용되는 규범에서 삐끗 어긋나고 미끄러지고 벗어났다가, 때로는 다시 규범으로 돌아가기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는 것. 그렇게 해서 규범들 간의, 또는 이항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전시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상한 작품들이다.

 

전시의 제목으로 택한 리드마이립스(READ MY LIPS)는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에이즈 인권 운동을 펼쳤던 액트-업(ACT-UP: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의 시각디자인 그룹 그랜 퓨리(Gran fury)의 한 캐치프레이즈에서 따온 것이다. 그랜 퓨리의 작업들은 에이즈 환자들의 죽음과 인권에 대한 경각심을 미국사회에 불러일으키기 위해 상황주의자들의 차용 전략을 채택해, 성 정치학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으로 재포맷, 재맥락화하고 재순환시켰다. 그러나 이 문구를 가져온다고 해서 그동안 부재하다시피 했던 한국 퀴어 미술의 존재가 일거에 가시화될 수도 없고, 기존 한국 미술의 시각적 생산물들이 성소수자 운동의 의미 있는 전략들로 한순간에 둔갑할 리는 없다. 우리는 리드마이립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지닌 이러한 맥락 바꾸기와 전유의 전략, 그리고 넘나들기와 연결하기의 전략을 통해 희미한 한국 퀴어 미술의 존재 혹은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이를 다양한 접점들로 확장시키고자 한다. 회화, 설치 작품에서부터 퍼포먼스, 팟캐스트 공개방송, 아카이브까지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본 전시는 서로 다른 욕망, 서로 다른 사랑, 서로 다른 문화적 프레임을 이야기를 하는 작품들을 통해 어수선하면서 왁자지껄한 충돌의 장을 만들고자 하며, 그리하여 퀴어라는 성 정치학의 용어가 다양한 맥락으로 확장되는 사건이 되기를 희망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품들과 퍼포먼스들은 드랙(drag), 가장(disguise), 가로지르기(cross), 괴짜(freak), 몸(body), 사랑(love)이라는 단어들로 설명할 수 있다. 퀴어 싱어송라이터이자 퍼포머인 이반지하는 기존 사회의 이성애적 성규범을 비롯하여 퀴어 커뮤니티 내부의 모순과 긴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계를 횡단하는 노래를 만든다. 일상의 자아가 아닌 다른 페르소나로 분한 이반지하 자체부터 일종의 드랙이며, 털이나 이상한 것들을 걸치고, 머리에는 기괴한 것을 뒤집어쓰고 파격적인 모습으로 삶의 진솔함을 노래하는 아이러니한 그녀의 공연은 철저한 가장과 내밀한 진실 사이를 오간다. 이승재의 퍼포먼스 <프린지>도 가장을 바탕으로 한다. 그가 유학시절 선보인 퍼포먼스에서 백인으로 가득 찬 스웨덴에 서 있는 한 아시아인 남성은 한국인으로 가득 찬 서울에서 외국인 남성으로 치환된다. 외부자로서 그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가면을 쓰고 하얀 깃털들이 달려있는 옷을 입어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긴다. 주변인으로서 주변부를 도는 그의 가장은 곧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환기시키고 가로지른다. 일러스트레이터 김의성의 드로잉은 전유와 패러디로 가득찬 서브컬처의 에너지를 전시장 한 가운데에서 발산하며 화이트큐브와 서브컬처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김의성은 익숙한 대중문화의 캐릭터부터 고급예술에서 잘 알려진 이미지를 갖고 와 자신만의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감성으로 난도질하고 괴상하게 바꾸어버린다. 맥락이 바뀌고 열화된 이 이미지들은 얼핏 보면 폭력적인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재현하는 것 같지만, 그 위치는 뒤바뀌어 있거나 기이하게 섞여 있다. 규범에 대한 위반, 그러한 경계 넘기를 가지고 노는 김의성의 그림들은 그 자체로 기괴하게 생긴 괴짜, 프릭이다. 이러한 괴짜, 이상한 놈, 미친년은 이은새의 회화 속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술에 취해 널부러져 비죽 웃고 있는 여자, 자신의 음부를 드러내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여자들의 모습에서는 다가가기 꺼려지는 광기가 보인다. 젊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저항하고 이를 위반하는 이은새의 도발적인 그림에서 이러한 위반의 무기는 흥미롭게도 바로 평소라면 관음의 대상이 되었을 그녀들의 몸이다. 이미래의 설치 작품은 사물과 유기체의 경계를 오가는 드랙의 형상을 보여준다. 신체의 기관을 연상시키며 모터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계조각이나 쇠로 된 인공 관절로 절합되고 절단된 채 기이하게 맞붙은 신체, 이러한 인공-몸-기계는 사물과 생명체의 치환이자 교란을 연상시키며 불안하게 덜컹거린다. 이 불안한 결합과 움직임은 출구 없는 폐쇄회로에 갇힌 욕망의 몸짓일지도, 아니 어쩌면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마조히즘적 사랑에 대한 비유일지도 모른다. 오용석의 회화는 존재의 탄생과 같은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면서 그러한 형상 안에서 에로틱한 원초적 감각을 응결시키거나 폭발시킨다. 작가가 이곳저곳에서 수집한 남자 토르소 이미지들은 작가의 세계 속에서 유형학을 만들며 하나의 몸으로 탄생하는데, 그 몸은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윤곽도, 성별도 알 수 없는 무경계의 몸이다. 나아가 이 카오스의 세계로서의 신체-형상은 그것이 분화하는 생성의 순간인지, 흩어져가는 소멸의 순간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마지막으로, 리타와 서동진은 각자가 손에 쥐고 있던 퀴어를 전시장 안에서 펼쳐 보인다. 팟캐스트 <퀴어방송>의 진행자인 리타는 전시장에서 밀실공개방송을 진행함으로써 신랄하고 내밀한 퀴어들의 수다를 전시장 한 가운데 가져오면서 소통과 교란을 증폭시킬 것이다. <파스빈더처럼>이라는 작은 라운지를 개설한 서동진은 자신의 사적 아카이브를 풀어놓으며, 세계와 불화하는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고픈 수많은 존재들과의 공감과 소통을, 아니 어쩌면 또 다른 불화를 도모할 것이다.

 

리드마이립스의 작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 다른 경계와 규범을 넘나들 것이다. 이 전시는 이 작가들의 작업을 퀴어 미술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이들을 통해 퀴어 미술을 다시 정의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광의의 드랙 개념을 가지고 와,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퀴어 미술이라는 상을 더욱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긍정적인 언어로서 말할 수 없는 퀴어함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작품들 속에서 찾아낸 것은 가장을 통한 경계 가로지르기, 즉 여자는 괴물로, 괴물은 남자로, 남자는 자웅동체로, 그리고 자웅동체는 사물로 가장하고 변하는 유희들이다. 지금까지의 내가 아닌 다른 것의 몸을 입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이 또 다른 나를 낳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포착하고자 한 드랙의 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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