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forget to remember to forget1 (le sommeil éveillé du monstre) 1


Luc  Jeand'heur(작가) 

번역 : 정현

 

나는 망각을 기억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 잠에서 깨어난 괴물)

 

« 장치들이 포획한 사용법의 가능성을 그 장치들로부터 매번 빼앗아야만 한다. 남용할 수 없음의 남용이야말로 다가올 세대의 정치적 숙제다. »

지오르지오 아감벤, 모독, 2005

 

한국은 물론 서양에서도 20세기란 우울함이 깃든 재앙의 감정을 시대 뒤에 남겨두었다. 개개인은 그만의 방법으로 이 역사의 광기와 죽음을 밀어내겠지만, 신세기의 요동 속에서도 의식을 지닌 젊은 예술가들은 동시대성 속에 내재된 (역사적) 연속성에 현혹되지만은 않는다. 오용석은 이런 시대적 상실과 방황을 확신하고 있는 세대에 속한다. 이 세대는 공허함을 채우길 거부하고 되려 공허함을 « 도려낸다 »2.그리고 그들은 전시주의도 크로노포비(연대기혐오증, 역주)도 없이 예술을 통해 « 세상을 믿는다 »는 힘을 실어준다. 무소유로 산다는 것 역시 소유하며 사는 것이다란 문구처럼 (시대적) 유산과 대결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관념적 사유를 의미한다. 오용석의 회화가 결핍, 부재, 몰이해 그리고 공허함과 같은 야만족의 신화로부터 얼룩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요소들은 작가의 공간을 활성화된 의지로 수놓아진다. 이처럼 강렬한 추상화의 영역은 작가가 개척한 공간을 형상화하며 이 공간들은 회화성으로 가득 채워진다.

 

« User's guide : 1. Follow the leaders. 2. Kill the past. 3. Load the weapons. 4 Destroy the machines. 5. Kill the leaders. »

Mathieu Kleyebe Abonnenc, RIOT,2000

“ 사용자 설명서: 1.리더를 따라가라. 2. 과거를 제거하라. 3. 무기를 옮겨라. 4. 기계를 파괴하라. 5. 리더를 제거하라.”

 마튜 클레이비 아본넥, RIOT, 2000

 

인터넷이 새롭게 느껴지는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이 매체는 현실 속에서 필름 위에 음영화를 그리는 대신 수많은 환영을 무한복제하기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했다. 이 거대한 소통과 기억의 망조직은 장소, 정보, 시간과 정체성의 공식적이고 일상적인 기술일 것이다.3인터넷기술은 공공연하게 일상을 통해 거대하고 전지구적인 무의식을 스스로 습득하고 있으니 말이다. 늑대가 먹이감을 찾기 위한 흔적들을 수집하기 위한 것처 오용석은 숲을 거닐 듯 인터넷을 산책한다. 그는 그 속에서 범죄현장의 이미지, 증거품, 시각적인 증언과 폭동의 사진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운명의 기층처럼 형상을 그려내는 신체와 장소들이다.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페테 슬로터다이크에 의하면, «  범죄현장은 지식에 의한 공범자와 같고 행위 속에 공범자를 내포하고 있는 기괴한 총합적 영역이다. »4오용석은 그 현장에 정시에 도착한다. 그의 작업은 알리바이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현장도 신체도 내버려두지 않는다. 현장으로의 회귀와 회화적 몸짓은 마치 나는 여기 있어, 실제로 말이야, 바로 살인에 의해 세척된 그 얼굴들 안에서, 버려진 현장 안에서 라는  고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 L'humanité est peuplée de plus de morts que de vivants. »

Auguste Comte, Coursdephilosophiepositive,1839

« 인류는 점점 더 산 자들보다 사자들로 채워져간다. »

오귀스트 꽁트, 긍적적 철학 수업, 1839

 

마치( 남성적인 여성처럼 보이는) 몸짓의 이미지는 개인적으로 우리들을 따라다니고 집단적으로 우리를 포획한다. 돈 디릴로의 삶의 명상처럼, «  존재는 예리한 의식의 절대적인 원천으로부터, 집착의 틀을 너머, 공포의 단계와 깊이를 통해 자족하려는 경향이 있다. ». 오용석의 전작 « 블로우-업 » 시리즈는 회화를 통해 일종의 살풀이를 수행한다. 인간세상 속에 드리워진 암흑으로부터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의 신화로부터 차용한 서술적인 퍼즐을 통해 대답한다. 관객은 작가의 « 정신적인 작은 영화 »를 완성시키기 위해 초대되었다. 그의 신체는 마치 (영화의) 검수작업이나 몽타쥬, 스토리보드를 위한 편집작업재료처럼  그의 시선을 작은 영화 속으로 이동시킨다. 이런 과정은 알레고리와 메타포로 연동하는데, « 암흑의 중심 »5으로 인도하는 수많은 길 속에서 만난  니진스키, 엘리자베스 쇼트 그리고 조이 스테파노는 그의 영웅인 말로우 Marlow의 언어로 이렇게 말한다 : « 우리는 오로지 꿈꾸듯 살고 있다. »

 

« Fabriquer de l'histoire est l'équivalent athée d'une prière. » 

Paul Veyne, interview pour le magazine Lire,2005/2006

«  역사를 만드는 것은 무신론자의 기도와 동등하다. »

폴 벤느, Lire 월간지와의 인터뷰, 2005/2006

 

그의 최근작은 흰색의 가치만이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준다. 왜냐하면 « 검정 » 역시 모든 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를 처음 대면하게 되면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포르노그래피 그리고 이미지에 대한 매혹과 같은 반복적인 테마와 마주하게 되면서 조금은 당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역시 인터넷의 성격이다). 오용석은 그 지점에서 이런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법과 어떻게 «  이미지들이 우리를 바라보는가 »를 질문한다. 프랑켄슈타인의 지시로 완성된 예술가처럼, 그는 이미 존재하는 사진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부한다. 이런 행위는 남겨진 이미지와 이미지를 남기는 무엇인가에 의해 구축되는 예술이다.  그것은 소비될 수 없거나 소화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실제의 이야기는 회화라는 우회로, 그 손길에 의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황홀한 권리와 자신만의 다른 시간성을 지닌 길을 차용한다. 격정이 사라진 후 캔버스 표면 위엔 유화의 기름만이 남아있다. 이미 예견된 « 회화의 죽음 »6이 실제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죽음은 언제나 작가의 작품 안에서 탐욕스러운 현재형의 신화를 그려내고 있다.

 

« C'est tranquille comme un corps, comme un organe qui bouge à peine, qui respire rêveusement jusqu'au moment des périls, mais c'est plein de secrets, de ripostes latentes, d'une fureur et d'une rapidité biologiques, comme une anémone de mer au fond d'un pli de granit... »

Paul Nizan, Laconspiration,1938

«  마치 신체처럼, 마치 위급한 상황까지 꿈꾸듯 숨쉬는 고작 움찔하는 장기처럼 고요하지만 그것은 마치 화강암의 굴곡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말미잘처럼 비밀과 잠재된 반격, 분노와 생물학적 속도로 가득차 있다… »

폴 니잔, 음모, 1938

 

회화적 원천은 질료적으로 숭배해야하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도 아니며 성스럽거나 그렇다고 귀족적인 것도 아니다. 바로 이 그림자 부분7은 걱정스럽고 식어버린 불안한 역사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럼에도 오용석의 작업은 회화가 지닌 정제과정을 거친 매혹과 유혹의 힘을 지니고 있다. 마치 극단적인 경험처럼, 마치 악몽이나 망상처럼, 마치 사람들이 되돌아와야만 하는 꿈처럼, 고독과 고립 속에 위치한 각 작업은 복합적인 드러냄과 감춤, 외적 연상과 내적 연상, 구상과 추상, 내부의 공간-사물과 외부의 공간-사물 그리고 진실게임을 형상화한다. 작가가 선사한 세계는 지옥의 풍경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군중 속의 한 개인의 예견된 죽음에 대해 니체적인 개인권력의지를 지시하는 듯한 죽음이미지를 통해 저항 속에서 어떤 중요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오직 예술작품만이 동시대적임을 제시할 수 있는 시간의 질서 속에서 추출된 어떤 한 순간을 통해 죽은 자와 죽음 사이의 상징적 균형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는 바로 이런 사유를 구체화한다. 괴물은 비인간이 아니다. 화가는 그만의 방법으로 열정적이고 야만적이기까지한 폭력성을 지닌 채 반대의 관계를 공유한다. 어두운 터널 끝은 우리의 인류와 같은 그들의 감정의 빛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 나는 망각을 기억하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나는 기억을 기억하는 것을 기억한다”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2. Les saints parlent aux oiseaux mais seuls les fous obtiennent des réponses. » 

Don DeLillo, Americana,1971

« 2. 성인은 새에게 말하지만 오직 광인들만이 대답을 들을 수 있다 »

돈 드릴로, 아메리카나, 1971

 

 하지만 혼동하지 말자. 왜냐하면 오용석에게 죽음에 대한 욕망이나 사랑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용석에게 표출되는 « 황무지 »8(wild는 광기로 해석될 수 있다) 는 이마쥬리(수집된 이미지들의 모음)의 반추를 위한 초석이다. 이런 광기어린 동요는 재현의 의미 안에서만 펼쳐진다. 재현할 수 없는 것을 재현한다는 것은 질료 이전으로서의 회화성이 무엇보다 정신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의 주제들은 재위치되고 회전하거나 방향을 바꾸고 흔들리고 위장되거나 까발려진다. 형상은 생경한 표현주의적인 타박상이나 신체의 뒤틀림의 세밀함에 복종한다. 신체의 외곽선은 흐릿해지고 색은 검거나 하얀 구멍, 공간들, 가면과 신체의 용솟음처럼 느껴진다. 전체적으론 초현실주의적 경험과 유사해 보이지만, 회화의 소재로서 바라본 이미지의 해체는 관람객에겐 그림의 표면 극단까지의 탐험을 요구한다. 우선, 과거도 미래도 없는 밀도감을 통해 회화적 경험을 발견한 후 형태와 함께 울림이 퍼져나오는 총체적 사유가 드러날 수 있도록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 증거물과 힌트를 가늠할 수 있는 혼란스러운 읽기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낯선 내적 회화성과 자아의 외적 주관 사이의 유기적인 융해를 이끌어낸다. 괴물성 혹은 세상의 단잠을 깨우는 스탕달 신드롬9처럼 말이다. 어쩌면 추락에 이를 때까지. 2008

 

 

1 titre d'une chanson d'Elvis Presley, 1955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제목, 1955

2 citation approximative de Jacques Derrida, SpectresdeMarx,1993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환영, 1993

3  En dépit de son origine militaire qui n'est pas le moule à cire perdue que l'on voudrait croire. Chacun y bâtit sa libre part d'éternité tant qu'il paye la caution de son abonnement. 

인터넷이란 군대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 출발점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가 보증금과 월정액을 지불했기 때문에 불멸의 자유를 그 공간 속에 건설할 수 있다.

4 Peter Sloterdijk, l'heureducrime etletempsdel'oeuvred'art,2001

피터 슬로터다이크, 예술작품의 시간성과 범죄의 시간, 2001

5 titre d'une nouvelle de Joseph Conrad, 1899

조셉 곤레드의 새로운 제목

6 en Occident dans les années 1960-70

서구의 1960-70년대

7 James Ellroy, Mapartd'ombre,1999

제임스 엘로이, 그림자 속 내 몫, 1999

8 état de nature et de sauvagerie paradoxal jeté vers l'avenir et presque révolu ingrédient traditionnel du « romance » roman romanesque américain

미래로 향하는 역설적인 야만성과 인간본질 및 이미 폐기된 미국의 낭만적인 « 로맨스 »소설의 전통적인 소재

9  le syndrome de Stendhal est une maladie psychosomatique qui provoque des accélérations du rythme cardiaque, des vertiges, des suffocations voire des hallucinations chez certains individus exposés à une surcharge d'œuvres d'art. Cette perturbation est assez rare et touche principalement des personnes trop sensibles. Ce syndrome fait partie de ce qu'on peut appeler les troubles du voyage ou syndromes du voyageur. Wikipédia.

스탕달 신드롬은 심장박동의 가속을 야기하는 정신신체의학적 질명이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예술작품의 벅찬 감동 때문에 현기증, 호흡곤란및 환각증상까지 야기시킬 수 있다. 이런 혼돈은 드문 현상이며 특별히 예민한 사람들에게만 일어난다. 스탕달 신드롬은 여행자가 겪는 신드롬 또는 여행이 주는 혼란함을 일컬을 수 있다. 위키페디아 백과사전.

 

<[Tu] 2011> 수록



RELATED TEXT : 망각 OBLIVION 2010



 




I forget to remember to forget1 (le sommeil éveillé du monstre)


Luc  Jeand'heur 

  

« Il faut arracher à chaque fois aux dispositifs la possibilité d'usage qu'ils ont capturée. La profanation de l'improfanable est la tâche politique de la génération qui vient. » 

Giorgio Agamben, Profanations,2005

 

Que ce soit en Occident aussi bien qu'en Corée, le XXe siècle a laissé derrière lui un sentiment de désastre avéré teinté de mélancolie. Chacun possède sa façon de refouler cette histoire de mort et de folie et il n'est pas étonnant de rencontrer de jeunes artistes qui, conscients du basculement du nouveau millénaire, ne sont pas dupes pour autant d'une continuité dans le présent. Yong-Seok Oh appartient à cette génération mondiale qui croit en une mémoire vive de la perte et de l'errance. Elle refuse de combler les vides ou de les « évider encore plus »2  et donne à l'art le pouvoir de « croire au monde » sans présentisme ni chronophobie. Affronter cet héritage implique aujourd'hui la pensée : vivre sans est vivre avec. Quand bien même les tableaux de Yong-Seok sont entachés du mythe de la barbarie, les manques, les absences, les incompréhensions, les vides y sont une volonté activée. Des zone d'abstraction intenses qui figurent les espaces conquis. Ils sont tous intégralement remplis de peinture.

 

« User's guide : 1. Follow the leaders. 2. Kill the past. 3. Load the weapons. 4 Destroy the machines. 5. Kill the leaders. »

Mathieu Kleyebe Abonnenc, RIOT,2000

 

Internet offre aux artistes qui lui sont contemporains de nouvelles possibilités de gratter les négatifs pour multiplier le nombre de fantômes dans le présent. Ce vaste réseau de communications et de mémoires est aujourd'hui une technologie ordinaire agrégative des lieux, des informations, des temps et des identités3.Elles'appréhendeégalementauquotidiencommeunvasteinconscientglobalàcielouvert. Yong-Seok se promène sur Internet comme dans un bois, pendant que le loup... pour y collecter son matériel initial. Il y puise des images de scènes de crime, des pièces à conviction, des témoignages visuels et des clichés d'émeute. Ce sont les lieux et les corps de l'après qui figurent comme des substrats de destins. Ce qui n'a pas disparu. Selon Peter Sloterdijk, « le lieu du crime est le périmètre de ce monstrueux global qui inclut ses complices par l'action et ses complices par le savoir. »4Yong-Seokestunartisteàl'heure.Sontravailneproposepasd'alibis.Ilnelaissenilescorpsnileslieuxàl'abandon.L'aveudugestepictural,dudétournementduréelest:jesuislà,pourdevrai,danslesvisageslavésdumeurtre,dansleslieuxdésertés.  

 

« L'humanité est peuplée de plus de morts que de vivants. »

Auguste Comte, Coursdephilosophiepositive,1839

 

Il y a des images comme des gestes (au féminin comme au masculin) qui nous obsèdent individuellement et nous possèdent collectivement. Comme des méditations sur la vie. Don DeLillo parle de « l’existence tend à se nourrir des profondeurs, du niveau de la peur, du plan de l’obsession, de l’absolue source de conscience aiguë ». La précédente série de toiles de Yong-Seok , Blowup,fonctionnaitcommeunesorted'exorcismepictural.Alanoirceurdumondedeshommes,ilrépondaitparunpuzzlenarratifempruntés à la légende de ses personnages. Le spectateur était invité à mettre en oeuvre son « petit cinéma mental ». Son corps y déplace son regard comme instrument de dérushage, de storyboard, de montage, de visionnage. Allégories et métaphores. Autant de routes pour nous conduire Aucoeurdesténèbres5 où Vaslav Nijinski, Elizabeth Short et Joey Stephano parlent avec les mots de Marlow, son héros : « Nous vivons comme nous rêvons, seuls ».

 

« Fabriquer de l'histoire est l'équivalent athée d'une prière. » 

Paul Veyne, interview pour le magazine Lire,2005/2006

 

Ses travaux récents nous font encore la preuve que ce n'est pas la seule vertu du blanc : le « noir » contient lui aussi toutes les couleurs. L’abord de ses toiles peut sembler déroutant dans le face à face répété avec des thèmes récurrents tels que l'angoisse de la mort, la pornographie et la fascination pour l'image (également caractéristiques d'Internet). Yong-Seok y interroge la façon dont nous regardons ces images et comment « elles nous regardent ». Un artiste de l'ordre de Frankenstein. Il dissèque les photographies déjà existantes et les récits associés. L'art de construire avec les images qui restent et ce qui reste des images. Ce qui ne peut être consommé, ce qui ne peut être digéré. Une histoire vraie emprunte les détours de la peinture, son temps Autre et sa formidable faculté de transformer en elle-même tout ce qu'elle touche. Après l'incendie ne demeure sur la toile que de l'huile. La « mort de la peinture » annoncée6  n'a pas lieu, elle incarne toujours dans les oeuvres de Yong-Seok  une mythologie du présent dévorante. 

 

« C'est tranquille comme un corps, comme un organe qui bouge à peine, qui respire rêveusement jusqu'au moment des périls, mais c'est plein de secrets, de ripostes latentes, d'une fureur et d'une rapidité biologiques, comme une anémone de mer au fond d'un pli de granit... »

Paul Nizan, Laconspiration,1938

 

Les sources picturales ne sont donc ni nobles ni sacrées ni révérence au médium ni politiquement correctes. Cette partd'ombre7 provient d'une histoire intranquille, refroidie, inquiétante. Les tableaux de Yong-Seok possèdent pourtant un pouvoir de séduction, de fascination qui est celui du filtre de la peinture. 

Chaque tableau figure un jeu confessionnel et complexe d'apparition et d'effacement, évocation et invocation, figuration et abstraction, espace-chose du dedans et espace-chose du dehors. Comme une expérience des limites, comme une hallucination, un cauchemar, comme un rêve, sur lequel on revient, dans la solitude et l’isolement. Les visions offertes par Yong-Seok ne sont pas des scènes d'enfer. Elles signifient qu’il y a sans doute là quelque vérité essentielle à découvrir dans la résistance à ces images de mort qui affichent la volonté de pouvoir nietzschéenne de la mort annoncée de l'individu par les masses. Seule l'oeuvre d'art permet d'atteindre cet équilibre symbolique entre la mort et le mort dans un instant arraché à l'ordre du temps qui le rend terriblement contemporain. Sa peinture se précise dans cette pensée. Le monstre n'est pas inhumain. Le peintre partage à sa manière une lointaine affinité avec sa violence sauvage et passionnée. Au bout du tunnel sombre se révèle la lumière du sentiment de leur humanité pareille à la nôtre. « I forget to remember to forget » devient ainsi « I remember to remember to remember ».

 

« 2. Les saints parlent aux oiseaux mais seuls les fous obtiennent des réponses. » 

Don DeLillo, Americana,1971

 

Il ne faut surtout pas se méprendre. Il n'y a ni amour ni désir de la mort. Chez Yong-Seok , cette « wilderness »8 qui s'exprime (qui est aussi « wild », folie) est  fondamentale dans la réflexion de l'imaginaire de son travail d'artiste. Le basculement n'a lieu que dans le sens de la représentation. Représenter l'irreprésentable. Avant d’être un médium, la peinture est donc une image mentale. Les sujets sont recadrés, combinés, déplacés, floutés, camouflés, dévoilés... La figuration soumet les détails aux contorsions et contusions d'un expressionnisme singulier. Les contours des masses sont estompés. La couleur comme un jaillissement de corps et de masques, d'espaces et de trous noirs ou  blancs. L'ensemble apparaît parfois proche d'une expérience surréaliste. La dissolution de l'image dans la matière-même de la peinture exige du spectateur d'aller lui aussi dans un au-delà, celui de la surface du tableau. En premier lieu, l'intensité sans passé et sans avenir de l'expérience picturale puis une trouble lecture mesurant  les indices, les pièces à convictions et les éléments épars des récits pour qu’apparaisse l'intégralité de la pensée qui est en résonance avec la forme. La fusion organique d'une picturalité intérieure singulière et d'une subjectivité extérieure à soi. Peut-être jusqu'à la chute, le syndrome de Stendhal9 qui nous éveille au sommeil du monstre/du monde. 2008


 

1 titre d'une chanson d'Elvis Presley, 1955

2 citation approximative de Jacques Derrida, SpectresdeMarx,1993

3  En dépit de son origine militaire qui n'est pas le moule à cire perdue que l'on voudrait croire. Chacun y bâtit sa libre part d'éternité tant qu'il paye la caution de son abonnement. 

4 Peter Sloterdijk, l'heureducrime etletempsdel'oeuvred'art,2001

5 titre d'une nouvelle de Joseph Conrad, 1899

6 en Occident dans les années 1960-70

7 James Ellroy, Mapartd'ombre,1999

8 état de nature et de sauvagerie paradoxal jeté vers l'avenir et presque révolu ingrédient traditionnel du « romance » roman romanesque américain

9  le syndrome de Stendhal est une maladie psychosomatique qui provoque des accélérations du rythme cardiaque, des vertiges, des suffocations voire des hallucinations chez certains individus exposés à une surcharge d'œuvres d'art. Cette perturbation est assez rare et touche principalement des personnes trop sensibles. Ce syndrome fait partie de ce qu'on peut appeler les troubles du voyage ou syndromes du voyageur. Wikipé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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